새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묵상과 해설 설교

천지에 있는 이름 중 해설|가장 귀하고 높은 예수 이름을 찬송하는 복음 찬송

찬송 소개

새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이름 가운데 가장 귀하고 높은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송하는 복음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예수님의 이름이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구원의 이름이며 왕의 이름이고, 죄인을 부르시는 은혜의 이름이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의 이름임을 고백합니다.

이 찬송은 새찬송가 80장, 통일찬송가 101장으로 사용됩니다. 영어 제목은 “There is No Name so Sweet” 계열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 해설 자료에서는 미국 개혁교회 목사 George W. Bethune이 작사하고 William B. Bradbury가 작곡한 찬송으로 설명합니다. 곡명은 “THE SWEETEST NAME”으로 소개되며, 초기 주일학교 노래집과 관련해 “GOLDEN CHAIN”이라는 곡명 설명도 함께 나타납니다. 자료에 따라 곡조와 수록 전승의 세부 표기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본 해설에서는 역사적 세부 사항보다 찬송이 담고 있는 성경적 의미와 복음적 고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찬송의 기본 정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찬송가 제목: 천지에 있는 이름 중

  • 찬송가 번호: 새찬송가 80장, 통일찬송가 101장

  • 영어 제목: There is No Name so Sweet

  • 작사자: George W. Bethune으로 소개됨

  • 작곡자: William B. Bradbury로 소개됨

  • 곡명: THE SWEETEST NAME 또는 GOLDEN CHAIN 관련 설명이 있음

  • 관련 성경구절: 시편 148편 13절

  • 찬송 주제: 예수 이름의 존귀, 구주의 이름, 십자가의 왕, 살아 계신 주님, 죄인을 부르시는 은혜, 영원히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 절 구성: 4절 구조로, 1절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한 예수 이름, 2절은 십자가 위의 왕 되신 예수, 3절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 4절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이름의 복을 노래함

이 찬송과 연결되는 성경 말씀은 시편 148편 13절입니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하늘과 땅 위에 뛰어남을 선포합니다. 신약의 빛 안에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이신 구주이시며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이름 앞에 엎드려 찬송합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도 이 찬송의 중심을 깊이 비추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에 무릎 꿇게 하셨으며,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은 바로 이 복음의 고백을 성도의 입술에 담아 줍니다.

찬송의 중심 주제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의 중심 주제는 예수 이름의 존귀와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 찬송은 반복해서 예수 이름을 찬송합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장 귀하고 높은 이름은 예수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권세자의 이름, 학자의 이름, 영웅의 이름, 부자의 이름, 유명인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름도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이름도 십자가에서 피 흘려 대속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이름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영원한 소망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만이 구원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말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배타적인 교만이 아니라 복음의 유일성에 대한 성경의 증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철학도, 도덕도, 종교적 열심도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 찬송은 예수 이름을 네 가지 흐름으로 묵상합니다. 첫째, 예수 이름은 주님이 나시기 전부터 예정되고 지어진 구주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우연히 역사 속에 나타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 안에서 오신 구주이십니다. 둘째, 예수 이름은 십자가 위에서 왕으로 선포된 이름입니다. 세상은 조롱의 뜻으로 명패를 붙였지만, 성도는 그 안에서 참 왕의 고백을 봅니다. 셋째, 예수 이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죄인을 부르시고 소망을 주시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 살아 계신 주님입니다. 넷째, 예수 이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이름입니다. 시대는 변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후렴은 이 찬송의 영적 정서를 잘 보여 줍니다. 성도는 주 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찬송합니다. 왜냐하면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가장 귀한 이름이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예수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닙니다. 복음의 소식입니다. 죄 사함의 약속입니다. 생명의 문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1절 해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1절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이 예수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피조물의 이름과 구별되는 이름임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이름이 많습니다. 이름은 존재와 명예와 권세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모든 이름이 동일한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름은 잠시 유명하다가 사라지고, 어떤 이름은 역사 속에 남지만 영혼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다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 이름의 의미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은 단순히 아름다운 이름이 아니라 구원의 이름입니다. 성도는 이 이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며,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1절은 주님이 나시기 전 지으신 구주의 이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신 구속의 역사입니다. 예수 이름은 베들레헴에서 처음 생긴 의미 없는 호칭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이름입니다.

성도는 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성육신이 있고, 십자가가 있고, 부활이 있고, 다시 오심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1절은 예수 이름을 귀하고 높은 이름으로 찬양합니다.

주 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찬송함

후렴은 주 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찬송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 이름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엎드립니다. 예수님을 단지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은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아는 사람은 경배합니다. 예수 이름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이름 앞에서 자신을 낮춥니다.

빌립보서 2장 10절은 말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 이름은 무릎 꿇게 하는 이름입니다. 이 무릎 꿇음은 강제적 굴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도에게는 사랑과 감사의 경배입니다. 내가 죄인이었으나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기에 엎드립니다. 내가 소망 없던 자였으나 예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었기에 찬송합니다.

후렴은 또한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라고 고백합니다. 성도는 많은 말을 듣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소식, 사람들의 평가, 불안하게 하는 말, 유혹하는 말, 상처 주는 말이 귀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말 가운데 가장 귀한 말씀은 예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이 들릴 때 죄인은 소망을 얻습니다. 예수 이름이 선포될 때 죽은 영혼이 살아납니다. 예수 이름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구원이 임합니다.

1절을 부를 때 성도는 이렇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주님, 천지에 있는 모든 이름보다 예수 이름이 귀합니다. 제 귀에 들린 많은 말 중에서 예수 이름이 가장 귀한 복음임을 믿습니다. 주 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2절 해설

십자가 명패에 쓰인 왕의 이름

2절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명패에 쓰인 대로 “유대인의 왕”이시며 곧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절은 십자가 위의 명패를 묵상하게 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었습니다. 세상 권력은 그것을 조롱과 고발의 표시로 붙였지만, 성도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적 증언을 봅니다.

요한복음 19장 19절은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예수님은 참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의 왕권은 세상의 왕권과 다릅니다. 세상의 왕은 힘으로 다스리고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왕입니다. 십자가는 왕의 패배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죄와 사망을 이기시는 왕의 승리였습니다.

2절은 “저 유대인의 왕이요 곧 우리 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만 머물지 않으십니다. 그는 모든 믿는 자의 왕이십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단순히 구원자로만이 아니라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선택과 삶의 방향이 주님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위의 왕이라는 고백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왕관 대신 가시관을 쓰셨고, 보좌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군대의 보호 대신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낮아지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성도는 십자가의 왕 앞에 엎드려 찬송합니다.

조롱의 자리에서 드러난 참된 왕권

예수님의 왕권은 십자가에서 가장 깊이 드러납니다.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로 보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구원의 길로 삼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죄인의 죄 값을 담당하셨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릴 부활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수치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영광의 자리입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말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왕으로 찬송합니다. 세상의 눈에는 약함이었으나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절을 부를 때 성도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왕으로 모시고 있는가. 십자가의 왕 앞에 내 자아와 욕망과 교만을 내려놓고 있는가. 예수님을 구원받기 위한 이름으로만 부르고, 삶의 주권은 여전히 내가 쥐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이름은 왕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앞에 성도는 엎드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왕, 그러나 부활하신 왕, 지금도 다스리시는 왕, 장차 다시 오실 왕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해야 합니다.

3절 해설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의 사역

3절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언제나 일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살다가 죽은 종교 창시자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구원하시며 중보하시는 주님입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말합니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성도는 과거의 기억만 붙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복음으로 죄인을 부르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며,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3절은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신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개인적 은혜의 고백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구원을 추상적으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부르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감격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 말씀은 죄인에게 가장 큰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를 부르십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 이름으로 부름받을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 이름 안에서 새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 소망을 주시는 예수 이름

3절은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참 소망을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에도 소망처럼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성공, 건강, 돈, 관계, 명예, 안정된 미래가 소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살아 계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성도의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이 아닙니다. 세상의 소망은 상황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질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의 소망은 부활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성도의 소망도 살아 있습니다.

3절을 부를 때 성도는 자신의 부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나 같은 죄인을 부르셨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제가 그 이름을 찬송합니다.”

이 고백은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도 보여 줍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은 죄인을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예수 이름의 복음입니다.

4절 해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4절은 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13장 8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세상은 변합니다. 사람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고, 인간의 마음도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성도에게 이것은 큰 위로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시대에 따라 약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능력은 세월이 지난다고 낡아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제의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셨습니다. 오늘의 예수님도 죄인을 부르십니다. 어제의 예수님은 병든 자와 상한 자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오늘의 예수님도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어제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의 예수님도 그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십니다. 영원토록 예수님은 동일하십니다.

이 고백은 성도에게 신앙의 안정감을 줍니다. 우리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질 때도 예수님의 신실하심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성도는 변함없는 예수 이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 이름으로 참 복을 내리시는 주님

4절은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참 복을 내리신다고 고백합니다. 예수 이름 안에는 참 복이 있습니다. 여기서 참 복은 단지 세상적 형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복은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화목, 영원한 생명, 성령의 은혜, 하나님 나라의 소망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수 이름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은 복의 통로입니다.

세상은 복을 소유와 성공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참 복으로 말합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영혼은 가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으면 부족한 가운데서도 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4절을 부를 때 성도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예수 이름 안에 참 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제 영혼이 예수 이름을 가장 귀한 이름으로 찬송하게 하옵소서.”

신학적 의미

예수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다

이 찬송의 첫 번째 신학적 의미는 예수 이름의 지극한 높음입니다. 천지에 있는 모든 이름 가운데 예수 이름은 가장 귀하고 높은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도는 예수 이름을 가볍게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름은 구주의 이름이며 왕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다

이 찬송의 두 번째 신학적 의미는 예수 이름의 구원성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이 진리는 교회의 복음 선포를 분명하게 합니다. 교회는 예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도덕적 교훈이나 종교적 위로만으로는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 이름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는 참 왕이시다

이 찬송의 세 번째 신학적 의미는 십자가의 왕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조롱당하셨지만, 바로 그 십자가에서 참 왕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왕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 삶의 주권을 드려야 합니다. 십자가의 왕을 믿는 사람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돌이켜 주님의 통치 아래 살아갑니다.

살아 계신 주님은 지금도 죄인을 부르신다

이 찬송의 네 번째 신학적 의미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재적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죄인을 부르시며 참 소망을 주십니다. 복음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도는 살아 계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교회도 살아 계신 예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시고 새 생명과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동일하시다

이 찬송의 다섯 번째 신학적 의미는 예수님의 불변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것은 변하는 시대 속에서 성도의 큰 위로입니다.

사람의 말은 변하고 세상의 기준은 변하지만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 능력은 영원합니다. 성도는 변함없는 예수 이름을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묵상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세상에는 귀하게 여겨지는 이름이 많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이름, 권세자의 이름, 유명인의 이름, 학자의 이름, 부자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를 건질 수 없습니다.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장 귀하고 높은 이름은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는 예수 이름을 익숙하게 부르면서도 그 이름의 무게를 잊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기도 끝에 붙이는 형식적 문구가 아닙니다. 예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죄인을 부르시는 이름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왕의 이름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의 이름입니다.

이 찬송은 우리를 예수 이름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예수 이름을 정말 아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신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을 정말 믿는 사람은 절망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 이름 안에 참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이름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2절은 십자가 위의 왕을 묵상하게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성도는 그 십자가에서 왕의 영광을 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죽으신 왕입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는 세상의 왕들과 달리, 예수님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3절은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주님은 과거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지금도 죄인을 부르십니다. 지금도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깊은 죄책감과 절망 속에 있어도 예수 이름을 붙들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라는 고백은 낙심의 말이 아니라 은혜의 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4절은 변하지 않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의 시대는 너무 빠르게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관계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이 고백은 흔들리는 영혼에게 닻과 같습니다. 예수 이름 안에 참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는 예수 이름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불안할 때 예수 이름을 부르고, 죄책감이 밀려올 때 예수 이름을 의지하며, 예배할 때 예수 이름 앞에 엎드리고, 복음을 전할 때 예수 이름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은 가장 귀한 이름입니다.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가장 복된 이름입니다.

함께 묵상할 성경구절

시편 148편 13절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이 말씀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의 중심 고백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과 땅 위에 뛰어납니다. 성도는 모든 이름보다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신약의 빛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이름은 구주와 왕의 이름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이 말씀은 1절의 구주의 이름 예수라는 고백과 직접 연결됩니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구원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성도는 예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죄 사함과 영생의 복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이 말씀은 예수 이름의 높임과 경배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무릎이 예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 이름 앞에 엎드려 찬송합니다.

이 찬송의 후렴은 바로 이 말씀의 예배적 응답입니다. 주 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요한복음 19장 19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이 말씀은 2절의 십자가 명패와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달고 죽으셨습니다. 세상은 조롱했지만, 성도는 그 십자가에서 참 왕의 영광을 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왕입니다. 성도는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고 그의 통치 아래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 말씀은 3절의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성도의 소망은 살아 계신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죄인을 부르시고 참 소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살아 계신 예수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은 4절의 핵심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시대는 변하고 사람은 흔들리지만 주님은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성도는 이 말씀을 붙들고 안정감을 얻습니다. 변함없는 예수 이름 안에 참 복과 참 소망이 있습니다.

정리

새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송하는 복음 찬송입니다. 1절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장 귀하고 높은 이름, 곧 구주의 이름 예수를 노래합니다. 2절은 십자가 명패에 쓰인 대로 유대인의 왕이시며 곧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3절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시고 참 소망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4절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그 이름으로 참 복을 내려 주심을 노래합니다.

이 찬송은 예수 이름을 다시 귀하게 여기게 합니다. 예수 이름은 단순한 종교적 호칭이 아닙니다. 구원의 이름입니다. 왕의 이름입니다. 죄인을 부르시는 이름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의 이름입니다. 변하지 않는 복의 이름입니다.

성도는 이 찬송을 부르며 자신이 무엇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이름을 더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의 이름을 더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이름을 너무 익숙하게 여겨 그 존귀함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이름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가장 귀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 안에 죄 사함이 있고, 그 이름 안에 소망이 있으며, 그 이름 안에 참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 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찬송해야 합니다.

주님, 천지에 있는 모든 이름보다 귀하고 높은 예수 이름을 제 영혼이 깊이 사랑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왕이시며 지금도 살아 계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변함없는 복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새찬송가 83장 「나의 맘에 근심 구름」

나의 맘에 근심 구름 해설|슬픔과 죄와 죽음의 길에서 유일한 친구 되시는 예수 찬송 소개 새찬송가 83장 「나의 맘에 근심 구름」은 슬픔과 낙심, 무거운 인생의 짐, 죄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죽음의 강을 건너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도를 위로하고 붙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