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는 감사의 찬송
찬송 소개
새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익숙한 감사 찬송입니다. 추수감사절이나 맥추감사주일뿐 아니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예배와 특별 감사예배에서도 자주 불립니다. 그러나 이 찬송은 단순히 풍성한 결실을 얻었을 때만 부르는 찬송이 아닙니다. 이 찬송의 깊이는 오히려 고난 속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평안할 때의 감사가 아니라, 전쟁과 질병과 죽음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부르는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의 독일어 원문은 “Nun danket alle Gott”이며, 영어로는 “Now Thank We All Our God”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사자는 독일 루터교 목회자 마르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이고, 작곡자는 요한 크뤼거(Johann Crüger)로 소개됩니다. 곡명도 독일어 첫머리에서 온 “NUN DANKET”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은 1647년 크뤼거의 성가곡집에 실린 것으로 소개되며, 후대에는 바흐, 파헬벨, 멘델스존 등 여러 음악가들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자료에 따라 세부 연도나 편곡 정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본 해설에서는 역사적 배경과 성경적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찬송의 기본 정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제목: 다 감사드리세
찬송가 번호: 새찬송가 66장, 통일찬송가 20장
원문 제목: Nun danket alle Gott
영어 제목: Now Thank We All Our God
작사자: Martin Rinkart
작곡자: Johann Crüger
곡명: NUN DANKET
박자: 4분의4박자로 소개되는 자료가 많음
조성: F장조로 소개되는 자료가 많음
관련 성경구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시편 136편 1절, 시편 103편 2절
찬송 주제: 감사,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사랑, 환난 중의 신뢰, 영원한 경배
참고 배경: 30년 전쟁 중 독일 아이렌베르크에서 목회하던 마르틴 린카르트의 감사 찬송으로 알려짐
이 찬송의 배경은 매우 깊고 무겁습니다. 마르틴 린카르트가 섬기던 독일 아이렌베르크는 30년 전쟁 중 피난민들이 몰려들던 성벽 도시였습니다. 전쟁과 기근, 전염병으로 도시는 큰 고통을 겪었고, 린카르트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장례를 집례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도 그 고난의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시대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다 감사드리세」의 영적 깊이를 보여 줍니다.
이 찬송과 잘 어울리는 성경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형편이 좋을 때만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일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통도 선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선하시며, 하나님의 섭리가 성도를 붙들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은 결국 자기 백성을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찬송의 중심 주제
「다 감사드리세」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사, 한없는 사랑에 대한 찬양, 고난 중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입니다.
이 찬송은 “다 감사드리세”라는 공동체적 요청으로 시작합니다. “나 혼자 감사하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감사하자”는 부름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찬송입니다. 감사는 개인의 감정으로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고백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받은 은혜를 혼자 간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찬송의 감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감사입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자기 백성의 삶을 지금도 붙드시고 다스리시며, 그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성도는 눈앞의 현실만으로 인생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때로 어둡고,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모든 현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1절은 예부터 주신 복과 한없는 사랑을 기억합니다. 2절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고, 기쁨과 평화의 복을 내려 주시며, 몸과 마음이 병들 때 은혜로 지켜 주시기를 구합니다. 3절은 감사와 찬송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드리며,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하신 주님을 경배합니다. 그러므로 이 찬송은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현재의 은혜를 구하며, 미래의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감사의 신앙을 보여 줍니다.
감사는 단순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의 반응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해석하는 신앙의 방식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세어 보며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성도는 하나님 자신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1절 해설
온 마음을 주께 드리는 감사
1절은 온 마음을 주께 바쳐 감사하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감사는 입술의 말만이 아닙니다. 온 마음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경적 감사는 단순한 예의나 감정 표현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인정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구원하셨음을 인정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시편 103편 2절은 말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감사는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은혜를 잊으면 불평이 커지고, 은혜를 기억하면 찬송이 회복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예부터 주신 복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눈앞의 문제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지워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오늘까지 생명을 붙드셨으며,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1절은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고 고백합니다. 섭리는 인간의 눈으로 언제나 즉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시간을 붙들고 계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갈 때 그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는 형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 50:20)
이것이 섭리 신앙입니다. 인간은 악을 행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그 악조차 자신의 선하신 뜻 가운데 다스리십니다. 성도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 수 있습니다.
예부터 주신 복과 한없는 사랑
1절은 하나님께서 예부터 복을 주셨고, 한없는 사랑을 선물로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감사의 근거는 일시적 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래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사랑하신 분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성도의 감사는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도 전에 하나님은 은혜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 전체를 바라보는 신앙의 응답입니다.
“이제와 영원히”라는 흐름은 하나님의 사랑이 현재와 미래까지 이어짐을 고백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만 은혜로우셨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은혜로우시며, 영원히 은혜로우십니다. 사람의 사랑은 변하고, 세상의 조건은 흔들리며, 우리의 마음도 자주 식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1절을 부를 때 성도는 이렇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주님, 지금까지의 모든 삶이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제가 이해한 시간도 은혜였고, 이해하지 못한 시간도 주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저를 붙드신 사랑을 기억하며 온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2절 해설
언제나 함께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2절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1절이 과거와 현재의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라면, 2절은 앞으로의 삶도 하나님께 맡기는 간구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성도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세상의 복은 많습니다. 건강도 복이고, 평안한 가정도 복이며, 일용할 양식도 복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의 중심에는 하나님 자신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형통은 영혼을 살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고난 중에도 성도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편 23편 4절은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은 음침한 골짜기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골짜기를 지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버림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2절은 기쁨과 평화의 복을 내려 달라고 구합니다. 여기서 기쁨과 평화는 단순한 감정의 안정이 아닙니다. 성경적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오는 기쁨이며, 성경적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데서 오는 평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 화목에서 참 평화가 흘러나옵니다.
몸과 마음이 병들 때 지키시는 은혜
2절은 몸과 마음이 병들 때 은혜로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성도의 삶은 추상적인 영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도 몸이 아플 수 있고, 마음이 무너질 수 있으며, 삶의 무게로 지칠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든 몸과 마음까지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 돌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두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상한 마음을 위로하셨으며, 죄로 무너진 사람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성도는 몸과 마음이 병들 때 하나님께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때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주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의 강함에만 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나타납니다. 몸과 마음이 병들 때, 성도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붙들게 됩니다. 병듦은 고통스럽지만,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2절은 또한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도의 삶에는 외적인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유혹, 세상의 악, 사탄의 공격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를 구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예수님께서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2절은 감사의 찬송이면서 동시에 보호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감사는 지나온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기도는 앞으로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게 합니다. 성도는 감사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감사합니다.
3절 해설
감사와 찬송을 주께 드리라
3절은 감사와 찬송을 모두 주께 드리라고 부릅니다. 이 찬송은 마지막 절에 이르러 더욱 분명한 경배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받은 복에 대한 반응이고,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높이는 예배입니다. 성도의 감사는 결국 찬송으로 완성됩니다.
감사와 찬송은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감사는 찬송을 낳고, 찬송은 감사를 깊게 합니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을 높이게 되고, 하나님을 높이다 보면 더 많은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예배 안에는 감사와 찬송이 함께 흘러야 합니다.
시편 136편 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성도가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근거가 상황이라면 상황이 바뀔 때 감사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감사의 근거가 하나님의 성품이라면, 고난 속에서도 감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3절은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혼란에 휩쓸리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초월해 계시면서도 자기 백성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권자이시며, 동시에 성도의 작은 기도도 들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하신 하나님
3절의 마지막은 하나님을 영원하신 분으로 경배합니다.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이 고백은 성도의 감사가 일시적 사건에 머물지 않도록 이끌어 줍니다. 성도는 과거의 하나님, 현재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을 모두 찬양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의 형편은 바뀌며, 우리의 마음도 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동일하십니다. 과거에 은혜로우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은혜로우시며, 오늘 신실하신 하나님은 장래에도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감사는 과거 회상에 그치지 않고 미래 신뢰로 나아갑니다.
이 찬송의 마지막 “아멘”은 믿음의 응답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사와 찬송을 주께 드립니다.” 이것이 아멘의 의미입니다.
3절을 부를 때 성도는 인생 전체를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과거의 은혜를 감사하고, 현재의 통치를 신뢰하며,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장래에도 영원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감사도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적 의미
감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이다
이 찬송의 첫 번째 신학적 의미는 감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감사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었기 때문에 드리는 반응이 아닙니다. 성경적 감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의 지혜와 선하심 안에서 다스리신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마르틴 린카르트가 이 찬송을 남긴 시대적 배경은 감사가 얼마나 깊은 신앙인지를 보여 줍니다. 전쟁과 죽음과 질병의 현실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고난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이 깊었기 때문에, 그 고난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붙든 것입니다.
성도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감사는 고통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감사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붙든다
이 찬송의 두 번째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의 전 생애를 붙든다는 것입니다. 1절은 예부터 주신 복과 한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3절은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간 전체를 감싸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과거를 돌아보며 은혜를 기억합니다. 현재를 살며 하나님의 동행을 구합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힘이며 미래의 소망입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속에 나타난 결정적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다면, 성도를 향한 그의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감사는 기도와 함께 깊어진다
이 찬송의 세 번째 신학적 의미는 감사와 기도가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1절은 감사로 시작하지만, 2절은 간구로 이어집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기쁨과 평화의 복을 주시며, 병들 때 은혜로 지키시고, 세상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감사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도 아픕니다. 감사하는 사람도 병들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도 악의 유혹과 고난을 만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그 모든 현실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참된 감사는 기도를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를 더 깊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지켜 주셨음을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를 주셨음을 알기 때문에 더 큰 은혜를 구합니다. 감사는 기도의 뿌리이고, 기도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가 감사의 완성이다
이 찬송의 네 번째 신학적 의미는 감사가 결국 경배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3절은 감사와 찬송을 주께 드리라고 명하고, 영원한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부릅니다. 감사는 받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하나님 자신을 높이는 경배로 나아갑니다.
성숙한 감사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합니다. 복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더 사모하게 합니다. 응답보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합니다. 이것이 감사의 성숙입니다.
그러므로 「다 감사드리세」는 단순한 감사 찬송이 아니라 경배의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감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의 묵상
「다 감사드리세」는 오늘 우리에게 감사의 깊이를 다시 묻게 합니다. 우리는 보통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건강이 회복되고, 원하는 것을 얻고,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합니다. 물론 그런 감사도 귀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일이 다 좋다고 억지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좋고, 질병이 좋고, 상실이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적 감사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통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현실보다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붙듭니다.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이 찬송의 배경을 생각하면, 감사는 결코 가벼운 신앙의 언어가 아닙니다. 마르틴 린카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감사하기 쉬운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전쟁과 역병과 죽음이 도시를 덮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해석한 믿음의 찬송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루를 살다 보면 감사보다 불평이 먼저 나올 때가 많습니다. 받은 것보다 부족한 것이 크게 보이고, 지켜 주신 은혜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시선을 바꿉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주신 복을 기억하게 하고, 한없는 사랑을 다시 보게 하며, 몸과 마음이 병들 때도 은혜로 지키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감사는 영혼의 방향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얼굴을 돌립니다. 불평은 마음을 닫게 하지만, 감사는 마음을 열게 합니다. 원망은 하나님을 멀게 느끼게 하지만, 감사는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계심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찬송을 부를 때 우리는 단지 감사절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데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내 삶의 모든 시간, 기쁜 날과 슬픈 날, 풍성한 날과 부족한 날, 건강한 날과 병든 날, 이해되는 날과 이해되지 않는 날까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감사는 섭리를 믿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사랑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붙들고 있음을 아는 사람의 찬송입니다. 성도는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묵상할 성경구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다 감사드리세」의 중심 정신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성경은 특정한 좋은 일에만 감사하라고 말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현실이 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성도의 감사의 근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으며, 성령께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기 때문에 성도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6편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말씀은 감사의 근거가 하나님의 성품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단지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다 감사드리세」는 바로 이 영원한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부터 복을 주셨고, 한없는 사랑을 선물로 주시며,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시편 103편 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이 말씀은 감사와 기억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감사는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택을 잊으면 마음은 쉽게 불평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은혜를 기억하면 찬송이 다시 살아납니다.
성도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세어 보아야 합니다. 생명, 구원, 말씀, 교회, 기도, 일용할 양식, 하나님의 보호,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영혼은 감사하게 됩니다.
창세기 50장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갔고 억울한 시간을 보냈지만, 훗날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일하고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인간의 악조차 하나님은 선한 뜻 가운데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다 감사드리세」가 노래하는 감사도 이런 섭리 신앙 위에 있습니다. 성도는 모든 것을 즉시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그의 손이 역사를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시편 23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말씀은 2절의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라는 기도와 잘 연결됩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음침한 골짜기가 없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그 골짜기 가운데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동행을 믿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병든 몸과 마음도 주님의 은혜 안에 맡길 수 있고, 세상의 악 가운데서도 주님의 보호를 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은 3절의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라는 고백과 연결됩니다. 성도의 삶은 변하지만 주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형편은 흔들리지만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감사는 오늘의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변함없으신 주님께 근거합니다. 어제도 은혜로우셨고, 오늘도 함께하시며, 장래에도 영원히 동일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정리
새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하게 하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은 예부터 주신 복과 한없는 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 때에도 은혜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며,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합니다.
이 찬송은 풍성한 결실의 자리에서만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쟁과 질병과 죽음의 배경 속에서 나온 찬송이기에, 고난 중의 성도에게 더 깊은 위로를 줍니다. 감사는 현실을 모르는 낙관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붙드는 고백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예배입니다.
성도는 감사해야 합니다. 받은 것이 많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찬송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기도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도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현재의 동행을 구하며, 미래의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에도 주님은 은혜로우셨고, 이제도 주님은 함께하시며, 장래도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주님, 제 삶의 모든 시간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게 하시고,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주님의 선하심과 영원한 사랑을 기억하며 온 마음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하옵소서.